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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기록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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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성록 서울대 규장각 소장, 2011년 등재

일성록

  • 「일성록」은 조선시대 1760년부터 1910년까지의 국왕의 동정과 국정을 기록한 일기로 총 2,329책이 전해진다. 「일성록(日省錄)」은 말 그대로 왕이 자신의 통치를 반성하고 후에 국정운영에 참고하기 위하여 쓴 일기로 세계적으로 유례가 거의 없는 기록유산이다. 현존하는 「일성록」 은 1760년부터의 기록이며 왕의 개인의 일기에서 국가의 공식기록으로 그 성격이 바뀌었다. 정조가 세손 시절 당시의 일상과 학업 성과를 기록한 「존현각일기」가 모태가 된 「일성록」은 정조가 즉위한 이후 국정업무가 많아져 직접 일기를 쓸 수가 없게 되면서 규장각의 신하들이 매일의 정사를 대신 기록했기 때문이다. 정조는 각종 기록을 모아 집대성하는데 큰 노력을 기울였으며 이를 정부의 업무로서 계속해 편찬하도록 하였다.
  • 18세기부터 20세기까지 동아시아의 국가들은 자국의 문화와 과학의 발전을 위해 서양의 과학과 기술을 받아들였는데 「일성록」을 살펴보면 과학기술이 조선에 전파되는 것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으며, 19세기 서양 열강의 제국주의의 확장으로 동서양 강대국들과의 충돌의 과정이 그려져 있어 한국사를 넘어 동·서양의 정치, 문화, 사회 모습과 세계사적 흐름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상소 제도를 통한 일반 백성과 왕의 소통을 기록하고 있어 18세기 당시의 하층민의 신분 변화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근세에 편찬된 다른 역사기록들이 현재보다는 과거의 사건들을 정리하여 편찬한 것에 비해 「일성록」은 그 당시의 기록이라 할 수 있으며 사건들을 일목요연하게 기록하고, 편하게 열람할 수 있도록 기사마다 표제를 붙였으며 내용에 주석을 달아 참고할 수 있게 하였다.
  •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가 왕을 3인칭인 ‘상(上)’으로 표현한 반면에 「일성록」은 왕을 1인칭 용어인 ‘여(予:나)’로 기록하였는데 이는 왕이 주체로 작성한 일기라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일성록」은 한 질로만 편찬된 유일본이라는 점에서 대체 불가능한 고유한 기록유산이라 할 수 있다.
  • 「일성록」은 1982년부터 1996년까지 총 86책의 영인본으로 간행되었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또한 「국역 일성록」은 1998년 정조대 번역을 시작으로 하여 2010년까지 정조대, 영조대 2종 135책이 간행되었으며 이 중 정조대의 70책이 데이터베이스로 구축되었고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홈페이지에서 원문을 서비스 하고 있다.
  • 「일성록」은 1973년 국보 제153호로 지정되었으며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11년 5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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